거침있는 사이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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"뭘 모르나 본데. 넌 나를 거부하고, 하찮게 여길 때 가장 아름다워." 이제 우리 사이에는 한 뼘도 안 되는 거리뿐이었다. “그러니 나를 붙잡고 싶다면, 내가 이렇게 나올 때…” 풀어진 가운 틈으로 다시금 손이 파고들었다. “이렇게 하고, 또 이렇게 할 때.” 그의 차가운 입술이 목에 닿았다. "밀어내 봐. 싫으면 싫다고 뿌리쳐 봐. 그러면 내가 네 남편으로 남고 싶어질지도 모르잖아?" -- 하츠웨스트는 외로운 도시였다. 플랫폼에는 하루에도 수십 번 기차가 오가고, 굴뚝에서 피어오른 새카만 연기가 하늘을 자욱이 메운, 그런 도시 말이다. 정처 없이 떠도는 노동자들을 밝고 선 귀족들은 매일 밤 화려한 샹들리에 아래에서 원을 그리며 춤을 췄다. 난 언제나 그 정점에 군림하는 귀부인이었다. 이대로라면 내 인생은 완벽했다. 비록 어린 나이에 이끌리듯 한 정략결혼으로 얻은 지위였지만, 상관없었다. 그러나 전쟁이 모든 것을 망쳐버렸다. 3년간의 치열한 싸움 끝에, 승리는 우리의 것이 되었다. 하지만 내 남편은 전사했다. 시체조차 찾을 수 없었단 말이다. 그가 죽고서야 나의 사랑을 깨달았다. 그리하여 나도 유령이 되어 그를 다시 만기로 결심한 그때, 죽은 줄 알았던 남편이 돌아왔다. 다섯 걸음 다가가면 닿을 거리. 달려가서 안기고 싶었다. 까치발을 들고 목을 그러안고 싶었다. 그리고 그 말을 해주고 싶었다. 오랫동안 생각해 온 그 말을. “다녀왔어.” 그는 그렇게 말하고선, 나를 지나쳤다. 내 옆을 스치는 감각만이 남을 뿐이었다. 당황한 나는 잠시동안 굳어 있었다. 그는 마치 나를 알아보지 못한 듯 굴었고… 그리고 가까이서 본 그의 눈빛은, 정말이지, 도저히 같은 사람이라곤 믿을 수 없는 눈빛이었다. “저요, 당신을 사랑해요. 네. 떠나고서야 알았어요. 그래도 이렇게 직접 말할 수 있게 돼서 참 다행이에요…” “그것 참 안 됐는데. 난 이혼하자는 말을 하러 왔거든.” 차갑고 무정한 그 음성이, 귓속 가장 깊은 곳까지 베어내 버릴 듯 파고들었다. 작가 메일: hidia2010@gmail.com 작품 표지: @bboooggi

"뭘 모르나 본데. 넌 나를 거부하고, 하찮게 여길 때 가장 아름다워." 이제 우리 사이에는 한 뼘도 안 되는 거리뿐이었다. “그러니 나를 붙잡고 싶다면, 내가 이렇게 나올 때…” 풀어진 가운 틈으로 다시금 손이 파고들었다. “이렇게 하고, 또 이렇게 할 때.” 그의 차가운 입술이 목에 닿았다. "밀어내 봐. 싫으면 싫다고 뿌리쳐 봐. 그러면 내가 네 남편으로 남고 싶어질지도 모르잖아?" -- 하츠웨스트는 외로운 도시였다. 플랫폼에는 하루에도 수십 번 기차가 오가고, 굴뚝에서 피어오른 새카만 연기가 하늘을 자욱이 메운, 그런 도시 말이다. 정처 없이 떠도는 노동자들을 밝고 선 귀족들은 매일 밤 화려한 샹들리에 아래에서 원을 그리며 춤을 췄다. 난 언제나 그 정점에 군림하는 귀부인이었다. 이대로라면 내 인생은 완벽했다. 비록 어린 나이에 이끌리듯 한 정략결혼으로 얻은 지위였지만, 상관없었다. 그러나 전쟁이 모든 것을 망쳐버렸다. 3년간의 치열한 싸움 끝에, 승리는 우리의 것이 되었다. 하지만 내 남편은 전사했다. 시체조차 찾을 수 없었단 말이다. 그가 죽고서야 나의 사랑을 깨달았다. 그리하여 나도 유령이 되어 그를 다시 만기로 결심한 그때, 죽은 줄 알았던 남편이 돌아왔다. 다섯 걸음 다가가면 닿을 거리. 달려가서 안기고 싶었다. 까치발을 들고 목을 그러안고 싶었다. 그리고 그 말을 해주고 싶었다. 오랫동안 생각해 온 그 말을. “다녀왔어.” 그는 그렇게 말하고선, 나를 지나쳤다. 내 옆을 스치는 감각만이 남을 뿐이었다. 당황한 나는 잠시동안 굳어 있었다. 그는 마치 나를 알아보지 못한 듯 굴었고… 그리고 가까이서 본 그의 눈빛은, 정말이지, 도저히 같은 사람이라곤 믿을 수 없는 눈빛이었다. “저요, 당신을 사랑해요. 네. 떠나고서야 알았어요. 그래도 이렇게 직접 말할 수 있게 돼서 참 다행이에요…” “그것 참 안 됐는데. 난 이혼하자는 말을 하러 왔거든.” 차갑고 무정한 그 음성이, 귓속 가장 깊은 곳까지 베어내 버릴 듯 파고들었다. 작가 메일: hidia2010@gmail.com 작품 표지: @bboooggi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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